갈대와 억새, 어떻게 다를까?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일렁이는 갈대와 억새. 멀리서 보면 둘은 비슷한 풀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답니다. 먼저 서식하는 곳이 다릅니다. 갈대는 습지나 갯가, 호수 등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억새는 주로 산과 들판에 넓게 퍼져 자라납니다. 빛깔도 서로 다르답니다. 갈대는 따뜻한 갈색빛을 머금고 있지만, 억새는 햇빛을 머금은 듯 은은한 은빛을 품고 있지요. 또 갈대의 줄기는 단단하고 속이 비어있는 반면, 억새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합니다. 생김새가 비슷해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풀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연은 세심히 바라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억새가 선사한 영감제주의 가을은 억새의 정원입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하늘하늘한 억새 무리가 은빛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종달리 마을은 매년 가을이면 억새로 뒤덮여 온통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선선한 바람,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도 억새 풍경 안에 가득합니다. 이렇듯 자연이 만들어낸 고요한 하모니 속에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 풍경을 옷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납니다. 그리고 종달리 마을을 산책하던 어느 가을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억새밭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유연하게 춤추는 억새들, 햇빛에 따라 변화하는 다채로운 은빛, 포근한 솜 다발 같은 억새잎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과 감정들을 모아 가디건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ROOM 598과 함께 그려낸 가디건특별히 이번 가디건 작업 과정에서는 제주의 감성을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 ROOM 598과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ROOM598은 종달리 마을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브랜드로, 이 마을의 억새 풍경을 그려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빛이 피어오르던 시기, 우리는 함께 종달리 억새밭을 바라보며 이 가디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억새 특유의 포근함과 부드러움, 과하지 않은 은은한 빛깔, 그리고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 이 모든 요소를 담아 가을에 어울리는 가디건을 디자인했습니다. 원단은 거칠지만 부드러운 질감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마와 면 혼방 소재를 사용했고, 전체적으로 유연한 패턴 위에 탄탄한 시보리를 길게 잡아 실루엣에 균형을 주었습니다. 억새처럼 하늘거리지만, 동시에 투박하고 거칠며, 그러나 그 안에 부드러움이 있는 그 모든 양면성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한밤중 문득 잠에서 깨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졌을 때, 조용히 걸쳐 입을 수 있는 가디건.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편안한 옷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아늑하고 따뜻한 ROOM 598, 투박하면서도 간결한 가르송필레. 각자의 취향을 담아 우리가 함께 걷던 종달리 억새밭을 그리며 완성한 이번 가디건은, 자연 속에서 피어난 또 하나의 조각입니다. 편하게 자주 찾게 되는 가디건이번 가디건은 실루엣이 확실한 일반적인 니트웨어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며 흐르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바람이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형태가 변하고, 옷을 입는 순간부터 포근한 감각이 전해지도록 감각적인 디테일을 세심히 다듬었지요. 가을마다 제주 들판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억새처럼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옷, 시간이 지날수록 멋이 더해지고 마치 자연의 한 장면처럼 삶 속에 스며드는 옷. 이 가디건이 여러분에게 그런 옷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르송필레는 앞으로도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며, 삶의 일부가 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 역시 제주의 가을 바람 속 억새 풍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끝>